4312 시리즈 계보 정리

오늘날 우리에게 친숙한 4312 시리즈의 원형은 1986년에 나온 4312A라는 모델이다. 이 때부터 45Hz~20KHz라는, 이 시리즈의 표준적인 주파수 대역이 확정되었고, 1인치 구경의 티타튬 돔이라는 금속제 트위터가 사용되었다. 모델에 따라 주파수 대역은 조금씩 다른데, 아무튼 그 기본은 4312A에 있음은 분명하다. 이후의 계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990년 4312XP
1992년 4312B
1996년 4312MK2
1999년 4312B MK2
2000년 4312C
4312SX
2004년 4312D
2011년 4312E
2016년 4312SE
2019년 4312G
다소 긴 리스트인데, 이 중 몇몇 모델은 흥미를 끈다. 4312의 경우, 1982년생이다. 그때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몇몇 애호가들에겐 꿈의 스피커로 자리잡은 4344가 나왔다. 한편 4312A가 나온 1986년에는 상부에 혼을 둔 2웨이 타입의 S101이 함께 나왔다. 여러모로 기념비적인 사건이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4310/4311을 통해 JBL이 1970년대를 이끌었다면, 4312를 통해 80년대 역시 강력하게 시장을 장악했다는 뜻도 된다. 태생이 프로용이지만, 얼마든지 가정용으로 통할 수 있다는 면에서, 4312 시리즈가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
하지만 2000년대에 들어와 개발된 D와 E는 그리 신통치 않다. D의 경우 무리하게 고역을 확장해서 무려 40KHz에 달하는 주파수 특성을 보이지만, 반대로 저역은 50Hz로 높아졌다. 약간 기형적인 모습이다. 또 E의 경우, 40Hz~40KHz라는 지나친 광대역을 추구한 결과, 스펙면에서는 일취월장한 모습을 보이지만, 채 정리가 안된 음을 들려줬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자. 이래서 2016년에 나온 4312SE는, 기본적으로 4312다운 면모를 보여준다. JBL 창업 70주년을 기념해서 만들어진 작품답게, 여러 면에서 일신한 모습이 보인다. 단, 한정판이어서, 많은 분들이 그냥 뉴스로만 접하고, 실물을 대하기 힘들었던 부분은 여러모로 아쉽다.
그런 면에서 2019년 CES에서 정식으로 소개된 4312G는 SE 버전을 기반으로 하면서 또 한 차례 개량이 가해졌다. 그리고 4312A의 기본에 충실한 모습으로 나와 여러 면에서 기대를 갖게 한다. 한편 비슷한 시기에 L100 클래식까지 런칭되어, 스피커의 제왕이라는 JBL의 위상을 서서히 되찾고 있다. 온고지신의 미덕이 톡톡히 발휘된 두 개의 모델이 아닐까 판단이 된다.
4312 시리즈의 미덕

그럼 수차례 개량을 거쳐, 무려 40년 가까이 장수 모델로 자리잡은 4312 시리즈의 미덕은 무엇일까? 개인적으로 빼어난 가성비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단순히 스피커의 가격만 갖고 따지는 것이 아니다. 스피커는 일단 파트너가 있어야 한다. 바로 앰프다. 앰프가 없으면, 스피커는 단순 진열품이나 장식품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아무리 스피커 가격이 싸다고 해도 앰프에 많은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면 별 의미가 없다. 이 부분에서 4312 시리즈는 독보적인 강점을 갖고 있다.
사실 나는 4312를 “푸어맨스 K2”(Poorman’s K2) 정도로 생각한다. 에베레스트, S9500, D67000 등 어마무시한 JBL의 플래그쉽 모델들. 정말 꿈의 스피커들. 당장 그 괴물들을 손에 넣을 수 없지만, 그래도 JBL의 DNA를 갖고 있으면서, 앰프에 많은 투자를 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구동할 수 있는 것이 바로 4312다. 개인적으로 호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지만 JBL을 듣고 싶을 때 늘 4312를 손에 넣었다. 물론 마음속으로는 언젠가 K2를 손에 넣으리라 다짐하지만, 그 한편으로 4312 정도로도 만족하는 내 자신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던 일이 비일비재하다.
아무튼 4312 시리즈는 앰프에 관대하다. 무척 관대하다. AV 앰프(야마하 계열이 좋았다)건, 리시버 타입(구형 마란츠)이건 가리지 않는다. 매킨토시의 인티 앰프가 제일 추천되는 매칭이지만, 의외로 진공관 앰프와도 상성이 좋다. EL34 정도를 장착한 제품이라면 무난하다. 50W 정도를 내는 소형 인티 앰프도 큰 무리가 없다. 세상에 이렇게 파트너에 관대한 스피커는 4312 시리즈 말고 없다고 해도 좋다.
이번에 만난 4312G는 여러 면에서 개량이 이뤄졌다. 2020년대를 빛낼 4312 계열의 새 스타라 해도 좋다. 60년 가까이 장수하는 007 시리즈가 그때그때 새로운 스타를 발굴해서 계속 인기를 유지하는 것처럼, 본 기 역시 그런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판단이 된다.
4312G의 특징

우선 본 기에 투입된 드라이버부터 보자. 저역에는 JBL 특유의 주름진 우퍼, 12인치 구경의 퓨어 펄프 콘으로 만들어진 JW3000SW-8 형번의 드라이버가 투입되었다. 이 사이즈에 12인치 우퍼라, 정말 놀랍지 않은가?
미드레인지는 폴리머로 코팅이 된 5인치 구경의 펄프 콘 JM125PS-8이 쓰였고, 트위터에는 마그네슘/알루미늄 합금 알로이 돔 054ALMg-1이 각각 쓰였다. 그리고 돔을 보호하기 위한 웨이브 가드가 눈에 띤다.
한편 인클로저는 고밀도 MDF를 채용, 댐핑 능력이 우수하며, 8오옴에 91dB라는 안정적인 감도는 앰프의 선택에 큰 자유도를 선사하고 있다. 메이커에 따르면 10~200W 사이면 족하다고 한다.
크로스오버 포인트는 650Hz와 5KHz. 미드레인지의 역할이 무척 중요한 설계라 본다. 개인적으로 고역쪽 크로스 오버 포인트가 매우 민감한 2KHz~4KHz 대역을 넘어서서 5KHz로 올라간 부분은 의미가 있다고 본다. 이 부분을 잘못 설정하면 고역부에서 미세한 음색의 차이나 디스토션이 발견될 수 있기 때문이다.
본 기는 상단에 미드와 트위터가 나란히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하나의 쌍이 되는 컨셉으로 이뤄져 있다. 그럼 트위터를 안쪽에 두느냐, 바깥쪽에 두느냐가 하나의 쟁점이 된다. 좁은 방이면 안쪽에, 넓은 방이면 바깥쪽에 둔다는 점을 기본으로 세팅하면 편리할 것이다. 이것을 영어로는 미러 이미지드 페어(Mirror Imaged Pair)라고 부른다.
또 가로로 설치할 수 있지만, 세로로 눕혀도 무방하다. 이것 역시 본인의 취향이나 룸 컨디션에 따라 설정하면 된다. 거기에 미드와 하이의 조절 장치를 적절히 활용하면 더욱 흥미로운 재생이 이뤄질 것이다. 참고로 포이트 5가 뉴트럴이며, 이것을 중심으로 줄이거나 높이면 된다.
아무튼 북셀프에 속하긴 하지만, 요즘의 관점에서는 상당히 큰 편이다. 19Kg이나 나가는 무게와 45Hz에 달하는 저역 재생력은 상당히 인상적이며, 적절한 스탠드의 활용은 필수. 워낙 족보가 있는 물건이라, 한번 사 두면 오래오래 만져가며 사귀어도 좋을 것이다. 최근 여러 변화를 거치면서 이제 JBL이 다시금 JBL다워지고 있다. 여러 면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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